백수남친 길들이기

부자 캥거루족, 보헤미안 아티스트, 지적인 고등 룸펜, 만년 배우 지망생. 사귀기 전에는 꼬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남자친구로 삼기엔 하자 많은 이 남자, 어떻게 길들일까?


▶ Type 1 부자 캥거루족
어떻게 만났나 일 년 동안 ‘올인’한 남자친구랑 헤어져 힘들어할 때 친구가 시켜준 소개팅에서 만났다. 스타일 좋고 차 좋고 집안 좋은 그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소개팅 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사귀기 시작해 2년째 만나고 있다.

그의 남다른 매력 그와의 연애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데이트가 즐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백수라 한가하지, 부자라 돈 많지, 즐거울 수밖에 없지 않나. 근사한 레스토랑, 트렌디한 바 리스트를 꿰고 있는지. 남자들은 회사 일에 치이면 데이트도 미루고 싶어 하는 족속인데 남자친구는 데이트 도사 같았다.

그의 쓸모없는 매력 돈 많고 시간 많은 남자는 여자도 많은 법. 다른 여자들과의 가벼운 데이트는 바람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사이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이 먼저 밥 한 끼 먹자, 영화 한 편 보자 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게 그들의 변명. 한창 일할 나이에 너무 데이트에만 열중하는 그를 못마땅해 하는 건 여자친구뿐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유유자적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부모 또한 그의 ‘엔조이’를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그렇게 집에서 쫓겨 날 수 있다.

길들이기 노하우 30년 평생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아온 남자친구. 돈 많은 부모님에게 얹혀살면서 독립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의 마인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캥거루족인 남자친구가 부모님에게 미운 털 박혀 쫓겨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급선무. 남자친구 부모님에게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되 센스 있게 행동할 것. 너무 자주 찾아가지도 말고 행사나 명절이 있을 때 한두 번 기품 있는 선물과 싹싹한 행동으로 공략하라. 너무 목메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금물. 단지, 부모님도 아들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에 정신 차리게 해서 건전한 사회인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만은 확실하게 보여라. 부모님이 ‘저 아이에게는 철부지 내 아들을 맡길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도록. 양은희(29세·은행원)

Type 2 보헤미안 아티스트
어떻게 만났나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했는데 그때 연극과에 다니던 남자친구가 강사로 초빙돼 왔다. 연극 하나만 알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남자친구가 무척 멋져 보였다.

그의 남다른 매력 예술가들은 자기도 모르게 작품 속에 자기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고 하는데, 그가 만든 연극의 한 장면에 우리가 나누던 얘기가 들어가거나 연인의 사랑하는 모습이 우리가 사랑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될 때의 감동은 백만 송이 장미꽃 따위의 유치한 이벤트와 비할 바가 아니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이 대부분 연극배우거나 영화배우거나 아무튼 유명인이라는 것도 좋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는 대개 더블 데이트가 되거나 아니며 거대한 모임이 되기 일쑨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이 꽤 화려해 주위에서 부러움을 사는 주말을 보낼 수 있다. 남자친구가 연예인인 건 아니지만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유명인인 사람들을 친구로 둔 덕택에 간혹 연예인의 결혼식에도 가고 유명한 배우와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의 쓸모없는 매력 예술하는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선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 일단, 빈곤함. 돈 많은 집 아들이라면 상관없지만 가난한 집 아들은 고행하듯 예술해야 한다. 남자친구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불만을 갖게 한다. 본격적인 연습 기간에 돌입하면 생일이고 기념일이고 그런 건 전혀 무의미해진다. 그저 공연을 위해 일로매진할 뿐.

길들이기 노하우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술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일반 사회인과 달리 아티스트에게 일이란 단순히 일이 아니라 ‘업’이다. 예술의 특성상 자기의 청춘을 바쳐야 하는데 그런 예술을 하는 데 여자친구가 방해가 된다면 그는 연애를 포기하려 할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사랑하듯 너의 일도 사랑한다’는 느낌을 주도록 하라. 그의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전제로 하되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면 예술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가 깨닫도록 할 것. 끝없는 희생은 결국 이별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아주 가끔,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인생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결혼에 대해 ‘지금 할 필요가 있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 이럴 때는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최후의 방법으로는 충격 요법을 권한다. 예술가들의 ‘똘끼’를 이용하는 작전인데 꽉 잡히느냐 아니면 떠나느냐, 확률은 50대 50. 정하연(26세·대학원생)

Type 3 지적인 고등 룸펜
어떻게 만났나
대학 다닐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다. 어느 날 한 웹진에서 대학생 기자를 뽑는 데 응모한 일이 있다. 운 좋게 뽑혀서 사무실을 찾았는데 함께 뽑힌 대학생 기자 여러 명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때 뽑힌 이들 중 하나였는데 덥수룩한 수염에 안경을 쓴 모습이 인텔리겐차 같은 분위기가 나는 게 지적인 매력이 넘쳤다. 그런 남자는 대개 키도 작고 패션 센스도 엉망이게 마련인데 남자친구는 180cm에 가까운 키에 그저 지오다노의 스웨터를 걸쳤을 뿐이지만, 그가 입으니 지오다노 아닌 랄프로렌 같았다.

그의 남다른 매력 지적인 남자가 매력적인 건 그와의 연애가 형이상학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다. 그저 카페에 앉아 몇 시간 수다를 떨어도 제법 수준 높은 토론이 되고, 영화 한 편을 봐도 누벨바그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공부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고 그런 액션 영화나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에로 영화 따위는 보러 가자 소리도 안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기어린 질투 행각, 과도한 소유욕 같은 걸 스스로 통제할 줄 안다.

그의 쓸모없는 매력
사상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의식이 넘치는 남자친구가 대학생일 때는 멋져 보였겠지만 사회인이 되고 난 후에는 사회 부적응자일 뿐이다. 회사원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그들의 기본자세. ‘네가 좋아하는 공부 열심히 하며 고시를 패스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면 주류 사회로 점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고시인 양 거기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 족속을 증오한다고 일갈한다.

길들이기 노하우 지적인 남자는 대개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당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처사나 무시 등을 견디지 못한다. 사실 애초에 사회생활에 도전해보지도 않고 ‘나는 사회생활에 맞지 않아’라고 단정하는 남자가 대부분. 그런 남자에게 사회생활을 하라고 설득한다고? 어림없다. 차라리 프리랜서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라. 자기의 시간을 맘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노동에 종속당했다며 분개하는 그에게는 프리랜서가 제격. 아는 것도 많으니 글 쓰는 일을 하면 딱 맞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공부도 하고 재미로 글도 쓰면서 살라고 넌지시 조언한다. 그리고는 백방으로 알아봐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을 몇 번 물어다주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남자친구는 자연스럽게 자유 기고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대기업 사원보다야 못한 돈벌이지만 지금껏 하던 것처럼 데이트를 즐기는 데는 무리가 없을 만큼의 돈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윤정선(28세·기자)

Type 4 만년 배우 지망생
어떻게 만났나 친구의 친구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배우 지망생이라는데 부담스러운 미남형도 아니고 적당히 잘생기고 적당히 몸 좋고 소탈한 매력이 있어 처음부터 호감이 갔다.

그의 남다른 매력 무엇보다 잘생겼고 몸이 좋다. 그런데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모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생긴 외모 말고 다른 것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의외의 성격이 그것. 잘생긴 남자는 바람둥이거나 왕자병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순수하다. 박용우처럼 숫기가 없고 정우성처럼 낯을 가리며 장동건처럼 무뚝뚝한 남자의 매력이 있다. 그가 바람둥이일 거라는 예상도 틀렸다. 가난한 배우 지망생은 바람둥이가 될 수 없다. 배우를 꿈꾸는 그들은 봐야 할 영화도 많고 해야 할 운동도 많아 잘생긴 얼굴 하나 믿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닐 시간이 없다.

그의 쓸모없는 매력 문제는 그가 너무 꿈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된다는 건 운과 때가 따라줘야 하는 건데 수년 동안 배우가 되고자 여전히 연습만 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때를 놓친 거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꿈 많고 순수한 남자친구는 배우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포기할 때를 모르는 열정과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들을 만년 배우 지망생으로 남게 한다.

길들이기 노하우 뜨고 안 뜨고는 어떻게 매니지먼트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자기 로비만큼 중요한 것 없는 시대다. 그런데 그저 연기 하나로 배우가 되고자 하는 남자친구는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꿈에 맹목적인 사람들은 수단을 찾는 데 미흡한 법. 이렇게 혼자서만 열심히 하다가는 끝끝내 배우 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도와줄 것. 꿈만 꾸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현실을 돌아보고 요령 피우는 법을 알려줘라. 좀 더 쉽고 빠르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라. 그런데 당신이 판단하기에 그가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도록 따끔한 모니터가 필요하다. 김은혜(30세·영화사 근무)


나는 왜 백수 남친만 만나는 걸까?
지적인 고등 룸펜만 만나는 여자
지적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건 아닌가. 지적인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해서 당신까지 지적으로 보이는 건 아니다.

부자 캥거루족만 만나는 여자
당신은 연애를 진지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데이트를 즐긴다는 데 연애의 목적이 있다면 부자 캥거루족 남자는 애인으로서 훌륭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관계, 소울메이트로 삼고자 한다면 그는 그리 좋은 상대가 아니다. 그는 함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울메이트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아티스트만 만나는 여자
당신도 남자친구 못지않게 열정적인 사람이다. 다만, 그 열정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예술하는 사람에 대한 열정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예술하는 아티스트인지 아니면 남자친구 그 자체인지 자문해보라. 남자친구가 아티스트가 아니라도 그를 사랑하겠는가? 대답은 ‘’No’일 가능성이 높다.

만년 배우 지망생만 만나는 여자
순정 만화에 등장하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던 소녀, 그게 바로 당신이다.
혹시, 연예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