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혹시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



특별한 말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숨 고르기를 하는 노처녀 상사. 격노(?)한 그녀의 말은 논리를 잃고 용의 콧김처럼 맹렬한 기세로 허공으로 발사된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길 몇 분, 순간 책상에 엎드려 흐느끼는 듯하더니 갑자기 지갑과 차 키를 들고 나간다. 사무실에는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후유증보다 처참한 정신적·감정적 공황이 몰아 닥친다.

미친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자, 지나가다 응가를 밟았다고 생각하자. 아무리 감언이설(?)과 같은 속담으로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 해도 도저히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그래 이번에야 말로 내가 떠난다. 저런 사이코 같은 상사 밑에서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사표, 이번에야 말로 프린트한다. 하고야 만다.

아, 잠깐! 심호흡을 하며 잠시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길. 또 당신 혼자만 흥분하고 있다. 옆 자리 동료와 선배를 봐라. ‘그러려니’의 놀라운 도인적 달관을 보이며 한치의 동요도, 흔들림도 보이지 않고 있다. 왜냐? 그들은 이미 익숙해졌다. 가해자인 히스테릭한 여상사가 정확히 1시간 후면, 저 문을 열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희희낙락 테이크 아웃한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 사람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라고 심신을 안정시키려 해도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 건, 상황 자체가 가져오는 회복 불가능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데, 어떤 여자가 다짜고짜 다가와 당신의 뺨을 한 대 갈겼다고 생각해봐라, ‘저 사람이 미쳐서 저러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가던 길을 갈 수 있겠냔 말이다. 특히 히스테리 발작의 주인공이 직장 상사라면 이건 상황이 심각하다.

흔히 ‘히스테리를 부린다’ 나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로 히스테리를 의학적인 정의와는 상관없는 뜻으로 사용한다. 일상에서 이런 말들이 짜증이나 화를 잘 낸다든가 감정의 변화가 심하여 변덕스럽다는 의미로 사용되긴 하지만 사실, 이러한 특징은 히스테리오닉 성격장애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히스테리 성격이 히스테리 증상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복잡한 의학적 분류는 한 쪽으로 차치해두고, 히스테리 성격을 중심으로 보자.

어릴 때부터 신경질적인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는가? 화를 내다 보면 자신조차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가?
혹 그렇다면, 이제부터 머릿속에 찬물을 끼 얹고 냉정해질 준비를 하라. 히스테리오닉 성격의 특성과 자신을 비교해볼 시간이다.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하고, 언제나 모임에서 중심이어야 하고, 변덕스럽고, 외모에 관심이 많고, 남자들에게 섹슈얼한 어필을 시도하고, 과장된 감정 표현을 하고….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남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현학적인 말을 뇌까면서 희열을 느끼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

여기까지만 듣다 보면, 이처럼 미성숙한 인격체가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건 나쁜 점만 ‘엑기스’로 뽑아서 나열했기 때문이지, 사람에게 어찌 100% 부정적인 모습만 있겠는가. 때때로 첫눈에 이들은 아주 매력적이다. 덜 자란 자아와 여성성의 소유자답게 귀여운 면모가 아주 강하다. 외모에 집착하기 때문에 독특한 스타일리시함을 자랑하기도 하고, 섹시함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도 처음에는 매력적이어서 접근하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하는 여자에게 진력이 나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한마디로 그녀들은 남자도 많고, 잘 사귀지만, 지속적으로 사귀기는 힘든 타입. 게다가 섹슈얼한 어필을 하면서도 정작 섹슈얼한 행동에는 관심이 없기에 남자들이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뺨 맞기 십상이다.

어떤가? 당신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하지는 않는가. 혹은 당신의 히스테릭한 그 사람의 얘기와 딱 들어맞지 않는가. 본인은 합당한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할 지 몰라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히스테리로 비칠 수 있다. 당신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히스테릭한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갈 일만 남았다.

Case1 어느날 문득, 나의 히스테리를 깨닫다
“내 성격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인간관계에 마찰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지난번에는 당돌한 후배 하나가 내게 히스테리가 점점 심해진다고 충고하더라. 정말 내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걸까?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Advice 자신의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면 문제의 반은 해결됐다고 본다. 물론, 한번 인정한다고 바로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문제가 문제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상적으로 말하는 히스테리와 히스테리형 인격 장애, 그리고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히스테리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히스테리형 성격이 일상생활에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인격장애가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성격이 좀 쾌활하고, 사람들한테 잘난 척도 하고, 표면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건, 그야말로 성격적 특성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계속 이렇게 과장된 행동과 감정, 관계로 생활하다 보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단 문제를 본인이 느끼고 있다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과도하게 과시하는 것 같다, 지나치게 감정 표출이 극렬하다 등을 깨닫게 되면 자신이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할 테니까. 그러나 본인 스스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인격 장애의 경우는 대부분 정신분석 치료가 우선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의 히스테리라면 다양한 원인이 있다. 우울증, 스트레스, 과로 등. 현재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Case2 상사의 히스테리,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침에는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더니, 점심 먹고 들어와서는 이따위로 하려면 집어치우라며 소리를 지른다. 똑같은 기획서를 들고 혼자 난리를 치니 어이가 없다. 지난번에는 ‘그게 아니라…’라고 말을 꺼내다, 말대꾸한다고 된통 혼나기만 했다. 가만히 있으니 억울하고 항변하려니 사태만 커지고. 도대체 상사의 이 들쑥날쑥한 히스테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Advice 누군가 당신에게 ‘히스테리를 부릴’ 때, 불난 집에 부채질은 금물이다. 일단, 그 자리에서 부딪치는 일은 옳지 않다. 논리와 이론을 내세워 그를 설득하려는 시도는 맨발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무모함에 비견될 수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이것을 분석해야 한다. 자신의 화를 만만한 상대인 당신에게 분출하는 건지, 아니면 당신을 향한 숨은 동기가 있는지. 전자의 경우라면 눈에 띄지 않는 게 현명하다. 폭풍의 시간만 피해간다면 문제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좀더 섬세한(?) 조치가 필요하다. 히스테릭형 인간은 대체로 타인의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 온갖 액션을 취하는 타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장되게 감정을 표출하고, 연극적인 모션을 쓰고, 자신을 과시하려고 한다. 의사들은 그가 당신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혹은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일부러 과장된 감정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Case3 특정 사람에 대해서만 히스테릭해진다
“어디를 가나 꼭 한 사람씩 있나 보다. 지금의 직장으로 옮긴 이유도 전 직장에 있던 직속 상사 때문이었다. 도저히 그 사람밑에 있을 수가 없어 이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나는 왜 이래 상관 복이 없는지.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 이곳에도 박혀 있다. 그 사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만 하니, 아무래도 회사를 또 옮겨야 할 것 같다.”

Advice 잘난 척하는 말투는 정말 참을 수 없어, 어쩜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윗사람에게 ‘딸랑거리는’ 모습이라니 역겨워. 유독, 한 사람에 대해서만 히스테릭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사람에게 성격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독 당신에게만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다. 죽도록 싫은 그 무엇. 실은 당신 역시 해보고 싶은 것이다. 잘난 척하고 싶고, 이기적이고 싶고, 딸랑거리고 싶고.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그림자라고 한다.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숨겨진 욕망. 그러니 자신은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는것을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사람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열등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람이니까. 의사들은 차라리, 극도로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그 무엇을 한번 따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심리적인 갈등 역시 부분적이나마 해결될 테니까.


내가 혹시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1 관심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다
2 대인관계에서 자주 부적절한 성적, 자극적인 행동을 한다
3 감정이 급히 변하고 피상적으로 표현된다
4 외모를 가꾸어서 관심을 집중시키려 노력한다.
5 인상적이면서 비논리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6 자기의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7 타인이나 주변 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8 상대방을 실제보다 더 가깝다고 여긴다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기준으로 이 중 다섯 가지 이상이면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라고 판단된다.